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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서평] 왜 학교는 불행한가, 전성은
    취미/문학, 책 2020. 3. 26. 11:00

    ※ 이 글은 2018년 대학시절 작성했던 서평문이다. 아동교육을 공부하면서 문득 그 당시 레포트로 작성했던 서평이 떠올라 블로그에 함께 올려본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국내도서
    저자 : 전성은
    출판 : 메디치미디어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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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개개인의 능력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 사회는 수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며, 미래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의 현실은 더 이상 비판으로부터 불가피해졌다. 그 개개인의 범위 속에는 단순히 성인을 넘어서 아동, 청소년 등 또한 포함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인격과 정신적 성장이 중요시되어야 학생들을 학교라는 피할 수 없는 경쟁사회 속에 던져 놓은 우리의 교육에서, 과거의 가장 큰 과실은 다름이 아닌 외면이라 보았다. 교육 구조로부터의 외면, 학생들의 행복으로부터의 외면, 교육의 실제성으로부터의 외면 등. 다양한 외면이 모여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진 것일 테다. 더불어 학습 현장을 누구보다 가깝게 직면하고 있는 학생들의 요구와 의견을 배제시킨 교육이 과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왜 학교는 불행한가>에서 저자는 우리의 교육 현실로부터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와 교육제도가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서평하면서 우리사회와 절대 뗄 수 없는 사회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을 연결시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교육 제도의 발전과 교육 권력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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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 민족이나 국가가 당면한 문제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모두 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잘못이 쌓여서 나타난 현상이지 어느 날 갑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 (p.13)

     

    저자는 처음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우리의 과거, 역사, 과정들을 강조하였다. 교육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서는 현재로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지만, 쉽게 경시되고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역사는 언제나 맥락이 존재하였지만, 우리의 주관은 맥락을 잃은 현상을 보면 더 더욱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과거를 되돌아 보는 과정으로 제도적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제도의 힘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힘을 인정하고 제도적 발전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사견으로 제도의 힘을 쥐고있는 자들은 자본가들이라는 거다. 사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사회 구조와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해 있는데, 교육 제도의 긍정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사회 구조적 문제들 또한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자본가들에 해당하기도 하는 권력층의 소멸은 인간의 욕구를 배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 욕구 속에는 저자가 말하는 이기주의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교육의 제도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사실 위로부터의 변화는 쉽지 않다. 위에 속해 있는 자들은 (저자의 언어를 빌려 이야기 하자면)현 제도를 통해 덕을 본 자들이 다수이며 그들은 덕을 보았기 때문에서라도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경원시한다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교육 제도의 발전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발전을 원하는 소수의 교육지배층과 다수의 깨어있는 피지배층의 힘이 절실하다고 본다.

     

     

     

    학교로부터 시작된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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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필요와 목적, 운영에 있어 그 출발부터 철저하게 통치 집단에 의한, 통치 집단을 위한, 통치 집단의 기관이었을 뿐 아이들을 위한 기관이 아니었다. (p.41) 

    ···

    그러나 아이들은 줄 세우기의 대상이 아니다. 학교교육에 있어 아이들은 각작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것을 ‘섬기의 교육’이라고 한다. (p.66)

     

    이 책에선 학교가 탄생하게된 근본적인 이유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제시 하였는데, 결국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닌 지배집단의 질서 성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다. 현대사회에 있어 교육은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 시작이 되었던 교육의 폭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주고 있다. 더불어 현대에서도 근본적인 학교이념이 국가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결정권을 지닌다고 하지만, 가장 거시적이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제들에 있어 우리는, 소외되고 있다. 인간에게 그 소외의 시작점 바로 학교라는 점이다. 소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은 힘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힘의 유무는 주로 누가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속된 말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슬프게도 어느 새 이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학생들은 미래의 스스로가 힘을 갖도록 하기 위해 자본주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말이다. 저자가 쓴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고 부와 권력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p.62)”라는 글만 봐도 너무 슬픈 글이자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의 중심이 국가가 아닌, 사회 권력층이 아닌,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할까? 저자는 교육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학생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것은 은연 중에 염두해두고 있었을진 몰라도 한번도 깊이 있게 고려해보진 못했던 발상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성장적으로 미술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교수법을 고민하면서도 생각치 못해던 방향성을 담은 것이다.

     

     

     

    현대사회 속에서 평화란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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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평화)에 적극적이지는 못하더라도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교육이다.(p.108) 

    ··· 

    교육이 하는 일, 곧 교육이 하는 일의 목표는 언제나 평화여야 한다. (p. 111)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저자가 전반적으로 평화론적 주장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평화로운 세상. 이만큼 이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불가능을 느끼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육적 과정과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일 테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질서의 평화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가간의 질서, 국가 내의 질서, 학생들을 향한 질서 등. 학생들은 학교 안팎으로 의도에 의해 혹은 비의도적로도 질서라는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다. 학교는 또 다른 작은 사회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나의 식견으로는 세계가, 글로벌 공동체가 결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면한 모든 생각과 이념들이 과도기에 들어서면서 각 국가와 사회는 굉장히 똑똑한 방법으로 배타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고 배운다. 그런 세상 속에서 평등, 자유, 공존을 외친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학교는 평화를 목표로 해야한다는 신념을 가르침으로서 점진적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것에 절실히 동의한다. 세계시민주의가 전제되지 않는 생각과 이념만큼 악질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무엇이 교육적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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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남은 과제는 힘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통제, 관리 정책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평등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다. (p.166) 

    ···

    ‘학교가 죽더라도 교육이 살아야 한다. 학교가 살자고 교육을 죽이면 안 된다.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할 때,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p.172)

     

    모든 정치·사회적 체제 및 사상은 부정성을 안고 있으며, 지금의 민주주의도 그 이름 하에 수 많은 파괴적 경향을 포용하고 있다.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멀지 않은 과거에 종말을 맞이 하였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민주주의 또한 언젠가는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해온 것처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종말은 더욱 발전되고 나은 제도를 위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믿음은 사회적으로 반역과 다름없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이 보편적으로 사회와 배반되는 생각이라면, 학생들에게 주체적일 권리를, 깨우칠 권리를, 사유할 권리를 준다는 것 또한 반역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누군가는 헛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한 번쯤은 고려해볼만한 문제라고 본다.

     

     

     

     


     

    개인적인 사견으로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은 저자는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읽기를 원한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 식견이 짧은 학부생으로서 교육 서적을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책들이 너무나도 현학적으로 딱딱하게 쓰였다는 것이었는데, 이 책은 조금의 공부와 고민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따라올 수 있으며, 가독성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을 가지거나 개인적으로 탐구한 부분이 있다면, 서적에서도 다음 장에서 더욱 구체적이면서도 발전적으로 글을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왜 학교는 불행한가>에선 하나의 구체적인 해결책보다는 앞으로의 교육적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그 방향성 또한 정답이자 진리라고 볼 순 없다. 진리는 언젠간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금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다가올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왜 학교는 불행한가>가 지닌 큰 의의는 다름 아닌 저자가 더 좋은 학교교육 제도를 ‘함께’ 찾고자 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 결국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든 교육은 학생 중심의, 학생을 위한 것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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